매일의 생각 Daily thoughts

감정의 동물

Sightenow 2021. 9. 10. 02:17

하루에도 수백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인지라
그 때의 감정을 담으려 무척이나 애를 쓰는 지금이지만
지금의 감정에 다시 짓눌려 주저앉아버린다.

조금 전 엄마와의 통화를 마친 직후
나의 감정상태가 요란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자꾸만 끄집어내고 들추어 내는데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하고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수십가지의 감정들이
내 머릿속부터 온 몸을 비틀고 있었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의 공통점은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의 상처라고 말하고 싶다.
인지하고 있지만 부정하고 싶고
노력하자마자 포기하고 싶고
누가 자꾸 끄집어내려 하면 더욱 더 회피하게 되는
나의 상처,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 작은 하나가
사람 한명을 지옥 속으로 끌어내리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족쇠를 채워버린다.

상처라고 하면 어둡고 우울한 것으로 착각해
입 밖으로 꺼내기도 두려워 하는,
혹은 커다란 사건이라 생각하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상처의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평생을 껴안고 가야 하는 크고 작은
깊고 심오한 상처들을
내가 어떻게 감히 다룰 수 있겠느냐만은
나의 상처에 대해
꺼내어 보고
관찰해 보고
관심을 기울여보고
슬며시 다가가서
조금씩 인정해보려 한다.

상처를 ‘치유’ 혹은 ‘치료’한다는 말보다는
상처를 조금씩 인정하고
그 자체로 사랑해보려 애쓰고 싶다.

상처 그 자체는 문제인 적이 없는데
우리는 자꾸 상처를 문제로 치부하여
혼자 그 상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해 온 그 사실을
자꾸만 들추어 내는 지인들에게
최근들어 화가 차오르던 중이었다.

평상시에, 아니 평생을 들어오던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로 인식했던 그 찰나의 한 순간부터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 상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안다고!!!!
제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언젠가,
아니 금방 돌아갈 건데
왜 자꾸 들들 볶는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한달동안만, 혹은 몇달동안만
‘잠시만’ 이러고 있겠다는데
변했다느니
알아서 잘했었다느니
도대체 인간의 기준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지
의문이 끝을 달리고 있었다.

가끔씩 이성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있다보면
의문이 시작된다.
이성과 감정이라는 것은 공존할 수 없을까?
그리고 이성과 감정의 목적은 무엇일까?
과연 상황에 따라 이성과 감정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가능할까?

다시 돌아가자면
감정으로 시작되었던 나의 순간의 생각들이
감정이 사그라듦과 동시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면서 혼자 감정을 분출해내고
이성적인 사고가 시작되면서
생각이 차곡차곡 쌓이고
질문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각과 질문들이 물고를 트고 올라올 때면
나는 가끔 인체의 신비를 느낀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심지어는 그러한 생각과 질문들이 감당되지 않아
뒤돌아서면 까먹는데도 말이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내가 흥미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미 이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의 목표를 이뤘을 때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곳의 나에게도 역시 질문했다.
과연 나는 행복해?

그리고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지?

발도 담군 적 없으면서
“내가 다 해봤는데 거기에는 행복이 없더라”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잠깐 행복해 보이는 것을 따라 벗어났었는데,
여기에도 역시 없구나를 확인하는 순간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내 무의식에서 확인했다.
아니, 확인해버린 것 같다.

‘이런다고 망하지 않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선택 앞에
내 주관만을 앞세워
(아니 사실 나머지 것들을 추방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방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망할까봐 두려워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안망한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당당하게 도망치려 애쓰고 있다.
다 있으면서, 다 주어졌으면서
도망가겠다고 애썼던 꼴사나운 나를
이제는 보내주고 싶다.
아니, 사실 아직은 그 경계에서 갈등 중이다.

하나 둘씩 정리되는 생각 속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내 머릿속에,
그리고 메모장에
하나 둘씩 나열하는 중이다.

감정과 이성의 경계는
정말 한 끗 차이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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