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32

동침

감정의 적은 감정이다 감정이 감정을 밟고 감정이 감정을 쓰러뜨린다 퉁퉁 부은 얼굴로 눈 코 입이 뭉그러질 때까지 다시 눈 코 입을 그려 넣을 때까지 얼마나 감정적이면 감정이 감정을 만나 다시 감정의 적이 될까 사람은 사람을 낳고 감정은 감정을 낳는데 사람은 사람을 낳고 왜 감정이 되는가 감정을 낳고도 감정적이 되지 않는다면 감정적인 감정들과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데 그런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감정을 먹고 감정을 배설하는 감정의 동물 감정의 악순환 감정의 폭식, 폭식은 요요를 무르고 요요라고 하면 언제든 쪼르르 감정이 달려나올 것 같다 사실 그동안 감정만이 계속 감정에게 꼬리를 쳐왔을 뿐 감정의 꼬리는 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감정들은 싹둑, 그래도 감정적이 되지 않는다면 완전 ..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내게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냐고 누군가는 타이르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지금 애써 버텨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책임감과 죄책감, 그것들로 얼룩져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비참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현생을 희생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비교해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현생의 불행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좋아하는 일이 영원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로 인해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행복 이외에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선택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을 선택하고 살아가는지 죽음이라는 선택지의 존재를 모르는 것 뿐일까 혹은 죽음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현실에 수긍하고 타협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말도 안되는 세상이 당연하다는 것을, 혹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버린 것이니까 말이다.

짊어진 것

끊임없는 죄책감에 속이 뒤틀린다 감당할 수 없어 끝내 마무리지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책임감 어깨에 맨 것도 없는데 나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땅이 꺼지도록 밑으로 파묻힌다 감당하지 못한 책임감과 나로 인해 일어난 일들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켜 나를 옭아매고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다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음 조차 장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더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며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 고통을 버텨낼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이유

누가 이리 난장판을 만들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돈되어 있는 것 하나없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더 많은 슬픔을 느끼도록 태어난 사람들은 결국 글을 쓰게 된다고 그 사람들은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픔을 달고 태어난다고 잘 쓰던 못 쓰던 수요 없는 공급이 되어도 태어날 때부터 글을 쓰게끔 태어난다고 나는 슬플 때 글을 쓴다 감정이 요동칠 때 글을 쓴다 나를 표현하려고 나를 드러내려고 나를 알리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을 쓴다

제목없음

순간이었다. 그리고 찰나였다. 속이 뒤집히고 니글거린다. 생각은 끊기지 않았고 계속 이어져만 갔다. 감정이 정리되길 바라지만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웠던 내 청춘의 감정을 쉽게 버리려는 노력은 사실 말도 안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바라보았고 음미하였다. 이미 다 끝난 일이지만 눈을 감고 떠올릴 때면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기억들로 인해 몇번이고 되새일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수만번 되새기기를 반복 토할 것만 같다 버틴다는 말이 촌스럽다 물을 들이키며 거울 속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담고 싶다 혼자만의 고민으로 괴로워하다 잠들어가는 네 뒷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다 수십가지의 감정들로 뒤엉켜 살짝 가져다 대보는 작고 작은 내 손가락 한 마디 너랑은 상관없어 오늘도 간에 들이부은 소주 3병은 그런데 토할 것만..

카테고리 없음 2022.02.08

주어짐

주어졌기에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흘러가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걸까 나만의 존재 이유를 찾은 이들은 정말 그 이유만으로 살아갈까 이유란 존재하지 않고 두려움에 쫓기며 작은 것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착각일수도 있음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 속에서는 격한 거부감이 일렁인다. 내가 본 세상에서는 내가 살아가며 느끼는 삶에서는 이유가 존재할 수도 이유가 존재함을 본 적도 없기에 부정이 기본값이 되어있음을 아무도 모르는 걸까